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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스릴러

스릴러 작가 도장 깨기 1- 히가시노 게이고

by namju.wym 2021. 4. 26.

겁이 많았던 3은 평소 소설과 에세이 류를 주로 읽었다. 소설도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가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본 류의 소설을 좋아했다. 정세랑, 편혜영, 최은영, 프랑수아즈 사강, 헤르만 헤세 등 서정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나 드라마적인 서사류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남편은 스릴러, 스파이, 호러, 공포류를 좋아했다.

 

덕분에 결혼 후 만든 서재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로 빼곡했다. 요 네스뷔, 마이클 코넬리부터 다카노 가즈아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장용민, 도진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장르를 넘나들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싯다르타 등 3이 읽은 책들도 몇 권은 있었지만 주로 내가 읽지 않은 장르의 책들이 많았다. 3은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반면 남편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은 대부분의 책을 읽었고 소장하고 있었다. 스릴러는 무서워서 잘 보지 못했던 3도 스릴러와 호러, 연쇄살인 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 에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어린 시절 좋아하고 많이 읽었었다. 그런 스티븐 킹이 고전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이나 톱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의 책은 꽤나 궁금했다. 스릴러 마니아인 남편의 추천작이기도 했다. 

 

4년 전 쯤 한창 강연 같은 것을 많이 들으러 다닐 때 참석했던 강연에서 한 성공한 CEO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업을 오래 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질 수도 있고 부인과 공통된 대화주제가 줄어들기도 한다는데, 저는 결혼 10년이 넘었지만 그런 적이 없었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읽은 책을 부인도 거의다 읽었더라고요.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릴러를 좋아하고 직접 글을 쓰기도 하는 남편. 그래, 나도 스릴러 한 번 읽어보지 뭐. 남편이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한 권씩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스릴러 장르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해외작가부터 국내작가까지 매력적인 작품을 리뷰하며 기록을 남기려 한다. 하루에 한 권씩 읽게 만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작가로 알고 있던 일본 작가다. 2012년 작이니 8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많이 읽히는 작품. 우리집 서재에는 이 작가의 작품이 3권 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 <악의> <둘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거의 하루에 한 권씩 몰입해서 읽었다.

 

처음으로 읽은 책은 <용의자 X의 헌신>이다. 2006년에 펴낸 책으로 1년 만에 12쇄를 냈다. 띠지에 적힌 문구과 리뷰가 인상적이었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 부문 3관왕 최초 기록, 이건 추리소설로 위장한 거룩한 사랑의 기록이다, 라는 말.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 적힌 욕망에 대한 이해. 

 

아무리 사소한 몸짓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한 어떤 의미를 가진다. 의미는 욕망을 끌어안고 있다. 파탄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욕망. 그 선악의 피안과 윤리적 세계를 대비시키며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책을 덮고 나서 마음이 아렸다. 거룩한 사랑의 기록이다라는 한 블로거의 리뷰가 그제야 이해됐다. 순수한 욕망에서 시작된 사건의 씨앗은 또 다른 욕망과 호기심, 때로는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이지만 무엇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내어준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도저히 이런 트릭은 생각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작가의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두번째로 읽은 소설 <악의> 역시 띠지에 붙은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인의 동기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 작가의 말이다. 살면서 죽이고 싶은 인간이 생길 순 있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죽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진다. 요즘에는 뉴스나 영화, 웹툰 등의 콘텐츠에서 '살인자'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무엇때문에 살인을 하게 될까. 평범한 사람이 살인을 하게 되는 동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나도 가끔씩 궁금해하고 있던터라 작가의 말을 본 순간, 단숨에 책을 펼쳤다.

 

사건에 대한 수기와 형사의 독백, 용의자 주변 인물로 부터 들은 용의자에 대한 이야기들, 형사의 회상문 등 글을 이끌어가는 형식이 참신하다고 생각됐다. 수기문 형식의 글 덕분에 사건에 보다 몰입될 수있었던 것 같다. 끝까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가가 형사의 솜씨에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없었다. 이런 이유로 살인을 할 수 있겠구나. 누군가를 죽일 수 있겠구나. 살인의 동기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독자에게 범인을 맞추도록 유도하는 형식의 소설이었다. 끝까지 범인을 말하지 않고 독자가 나름대로 추리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대신 범죄현장과 취재에서 얻은 근거를 꼼꼼히 밝혀두어 독자가 헷갈림 없이 추리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왜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는 흔히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캐릭터에 대한 묘사에 빈틈이 없어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악의>에 나왔던 가가 형사가 이 소설에도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가는데, 형사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돼 인물을 포괄적으로 그려볼 수 있어서 재미를 더했다. 추리모임에서 읽는 다면 함께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 좋을 것 같다.